여유롭게 사는 훈련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은 궁핍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안다고 말했습니다(빌 4:11~12). 저는 궁핍하게 사는 법은 체득한 것 같습니다. 한국 전쟁을 치른 세대가 다 그렇지만, 가난을 경험해 보았고, 특별히 저는 전쟁 때 양친을 잃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절약하는 것이 몸에 뱄습니다. 문제는, 궁핍하게 사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풍족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팁 문제로 다퉜습니다. 미국에서는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에게 팁이 수입원이기 때문에 팁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봉급을 받기 때문에 팁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럽 어떤 식당 종업원들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팁을 요구합니다. 경우에 어긋난다 싶어서 팁을 주지 않으려는데, 아내는 가난한 사람들 돕는 셈 치고 주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난 옹졸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속이 상해서 크게 다투었습니다.
제 불편함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우기지만, 사실 내가 불편해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사도 바울처럼 풍족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작은 돈에 인색한 것이 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손꼽히는 미국 부자의 아내가 전기료를 절약한다고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불을 껐다는 사실을, 검소하게 사는 삶의 표본으로 제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이 검소해서라기보다는 풍족함을 누리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는 생각이 듭니다. 잘 사는 사장 댁 주부가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고요. 이전에는 가난했다 할지라도 이제 부자가 되었으면 자신과 남을 위하여 쓰면서 살아도 될 텐데, 풍족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후 저와 아내는 은퇴연금으로 살고 있습니다. 주택과 자동차 은행 빚은 다 갚았고,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했고, 둘 다 정년퇴직 할 때까지 풀타임으로 일했기 때문에 은퇴연금만 갖고서도 여유 있게 삽니다. 인색한 마음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끼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가정교회 국제가사원장 최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