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시대 홀로 있기
작금의 시대를 일컬어 디지털 혁명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이전보다 몇 배나 소통이 쉬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오히려 사회성과 우정을 유지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외로움과 고독이 만연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홀로 있는 삶은 위험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홀로 있을 때 세미한 하나님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40일간 호렙산에 머물며 하나님과 밀도 높고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 홀로 40일간 광야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물도 음식도 그늘도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그곳에서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되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까지는 참된 쉼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 안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목이 마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마름의 원인을 바르게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는 조급함에 시달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목마름의 원인을 고독이라고 생각해서 SNS 같은 인터넷 비밀공간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컴퓨터나 핸드폰을 한시도 놓지 못합니다. 또 성도들은 신앙적 활동과 분주함을 통해 만족을 찾으려 합니다.
근본적인 목마름의 해결을 위해서는 근원적인 기쁨과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에너지가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물이 내 안에서 솟구쳐야 합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생명력이신 하나님과 깊은 연결이 없이 종교적인 활동과 종교적인 분주함으로는 목마름이 해결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또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지 채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홀로 있기란? 단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독대입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과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시집간 딸이 부모님 댁을 방문하여 쉼의 시간을 갖듯 기도를 무거운 짐이라기보다 하나님과의 홀로 있기라는 말씀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