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일회용 반창고가 아닙니다.

by 동부중앙교회 posted Sep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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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일회용 반창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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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집이나 아내,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여러 곱절로 되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누가복음 1829~30)

 

   사람들은 이 구절을 오해하여 무작정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도 버리고, 부모도 버리고, 처자식도 팽개치고 따라나서야 한다고, 그리고 그 대가로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고 여깁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런 식의 맹목적인 충성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께서 하물며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주님의 말씀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집착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 대한 집착이 하나님 나라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착을 안고서는 진정으로 예수를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집착 없는 사랑이 가능한가. 집착이 있어야 사랑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건 어찌 보면 사랑의 가면을 쓴 욕망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집착하는 바를 자식에게 강요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대개 좋지 않습니다. 반면 자식을 지혜롭게 키우는 이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집착을 내려놓고 집착 없는 사랑으로 대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치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브라함은 말년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요. 그 집착이 오죽했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킬레스건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어린 양이 아닌 어린 자식을 번제에 바치라니 말입니다. 하지만 번민에 번민을 거듭하던 아브라함은 결국 산으로 가서 아들을 향해 칼을 빼 듭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언가를 틀어쥐고 있을 때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그걸 내려놓을 때 비로소 들립니다. 그러니 집착 없이 마음을 내는 이에게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로또에 당첨됐을 때 덩달아 따라오는 얕은 행복, 사라지는 행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행복론은 요즘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붙여대는 일회용 행복 반창고와는 차원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