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의 목표를 향하여
안식년 때, 몇 교회들의 예배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방문한 교회들 모두 담임목사님들의 인격이 훌륭하고 설교도 좋다고 알려진 교회였고, 어느 정도 부유한 곳에 있는, 그리고 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는, 바깥으로부터 좋은 교회라고 평가를 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교회는 다른 교회의 예배와 비교해 뭔가 실망스러웠습니다. 분명하게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예배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성도들의 예배드리는 태도 역시 다들 적극성이 없이 관심 없는 외인 같은 모습이어서 약간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방문한 또 하나의 교회는 뭔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설 때부터 가벼운 긴장감이 있었고, 예배 시간에 거의 예외 없이 설교에 집중하고 반응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왜 그럴까? 두 분 목사님이 다 훌륭한 분들이고, 설교도 비슷하게 좋으시고. 교회의 사이즈도 둘 다 중형 이상인데 과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궁금했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큰 이유 중 하나는 편안함의 안주와 불편함에 따른 헌신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교회는 잘 안정되어, 좋은 프로그램에, 잘 정돈된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불편함이 없는 교회인데 반해, 두 번째 교회는 많은 부분이 불편한 교회였습니다. 본당이 좁아서 나누어 예배를 드려야 하고, 주차장도 없어서 멀리 학교 운동장까지 걸어가고, 차가 다 빠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교육관은 형편없이 좁은 등 여러 가지가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다니는 헌신 때문에 교인들이 살아있고, 예배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은 불편한 점이 사라지고 편안함에 안주하면 영성도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불편함을 못 견디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작고 재정이 가난할 때는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사이즈가 커지고 재정이 좋아지면 화려한 건물을 짓고, 넓은 친교실을 만들고, 불편함이 없는 주차장을 만들고, 시스템도 더 편하게 고쳐나가고, 그래서 교회는 갈수록 정말 흠잡을 데 없는 곳이 되어가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영성은 죽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아직은 불편한 부분이 많은 교회입니다. 또, 우리 교회는 시설뿐 아니라 정책에서도 성도들을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많은 교회입니다. 올해 창립 64주년을 맞이했고, 가정교회 창립 19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편안함을 추구하라고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영적싸움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불편하지만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으라. 는 주님의 명을 위해 다시 힘을 내서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