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을 인생
창세기 12:1-3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가정은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복 받을 일은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음이 마땅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숭배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위대한 복을 약속하심은,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복을 주시겠다고 정해놓은 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든지 균등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시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결단하면 그에게 복을 허락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하나님의 복은 조건으로 받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목사의 눈으로 어떤 성도를 보면 “특별히 복이 있는 인생”이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시고 들어 쓰시겠구나! 하는 감동을 받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행복합니다. 또 평범한 인생도 비범한 삶이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은 평범하다 못해 콩가루 집안 같은 저주가 있는 가정에서 살았지만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의 명문가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49장으로 넘어가면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열두 아들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기도 장면이 나옵니다. 장자인 루우벤부터 막내아들베냐민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야곱이 기도하는데 요셉을 위한 축복은 다른 아들들과 비교해서 월등히 차이가 나게 축복한 반면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12번째 아들 베냐민에 관한 기도는 축복이라기보다 거의 저주에 가깝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모든 자식이 다 잘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는 것인데, 왜 차별을 두어 기도했을까요? 창49:28절을 보면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가가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저들 각인의 분량이 그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복 받는 원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같습니다. 하지만 그 원리를 그대로 믿고 적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하늘과 땅의 차이를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