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유
예수님의 첫 이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일’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말입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본 제자들이 ‘비로소 믿기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첫 이적’을 보기 전에는 제자들도 확신이 없었던 겁니다. 어쩌면 반반이었겠지요. 이 사람이 정말 하늘 사람인가, 아닌가. 반신반의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자 ‘비로소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당대의 유대인들은 ‘이적’을 중시했습니다. ‘이적=하늘의 징표’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의 첫 이적을 본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그 장면, 그 시간, 그 공간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겁니다.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물음표가 하나 있습니다. 4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이 가장 후대에 기록됐습니다. 앞의 세 복음서와 수십 년 차이를 두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첫 이적 일화는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돼 있습니다. 마가, 마태, 누가복음에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이적 일화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어떤 의혹이냐고요?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첫 이적 일화는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런 논쟁을 생각하며 저는 가나의 혼인 잔치 교회 뜰에 섰습니다. 새 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불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울리는 건 그런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첫 이적이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후대의 가공이나 전승인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을 울리는 건 거기에 담겨 있는 본질적 메시지였습니다. 저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세상 그 어떤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예수님의 그 한 마디로 인해 우리 앞에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 길의 끝에 하늘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생각합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큰 이적이 있을까. 그리고 또 생각합니다. 요한사도는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내 안에 있는 것이든 내 밖에 있는 것이든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안에 무색무취의 물을 꺼내어 포도주가 되게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하나님은 그것을 내 몫으로 남기시면서 그것을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필요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