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의 질문
생명의 삶 마지막 수업 후 딱 한 분 영접을 하지 않으신 분의 질문지가 있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반면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아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처럼 삶속에서는 응답이나 상급도 약속되지 않는 법인데, 무엇을 근거로 사후에 자신이 원하는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혹 교회는 안 나오시더라도 목회자 코너는 어떤 식으로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싶어서 여기에 답변을 올려 봅니다. 질문은 두 파트입니다. 믿는 사람도 기도가 응답이 안 되어서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이 세상에서 안 이루어지는 기도 제목이 다음 세상에서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반대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분들이 괴로움 속에서 산다는 것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서 그 고통을 훨씬 더 잘 이겨냅니다. 특별히 소명이 있는 경우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은 항상 바깥에서 보면서 ‘봐라. 저들도 고통을 겪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라고 하지만, 정작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의 삶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화를 누리며 고통을 행복으로 극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개인의 믿음의 부분이기 때문에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그걸 확신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증명을 하라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아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그 사랑을 확신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때가 되면 사업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했고, 아들은 그걸 믿고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 와서 ‘너희 아버지가 그걸 물려 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아버지들은 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에는 속여. 너희 아버지도 그럴 거야’라고 하면 증명할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압니다. 지난 30년 동안 아버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신실하심, 도움이 필요할 때 채워주셨던 것,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 그런 모든 경험을 통해서 ‘응~ 나는 확신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만 아는 것, 즉 아버지와 나만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아들은 의심하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세상에, 어쩌다 아버지를 의심하게 되었을까? 아버지와의 따뜻한 신뢰 관계없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신앙은 바깥에서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상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바깥에서 의심하지 말고 직접 안으로 들어와 보면 좋겠습니다.
가정교회 국제가사원장 이수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