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으로 다시
예수님은 배에 올라타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뒤 배를 설교단 삼아 가르침을 펼치셨습니다.(누가복음 5장 3절) 설교를 마쳤을 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누가복음 5장 4절)
그리스어 성경을 영어로 직역한 성경은 더 구체적입니다. “Back up into the depth, and lower your nets for a catch(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 그리고 그물을 내려서 잡아라).”예수님은 왜 “깊은 곳으로 가라”라고 하지 않고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라고 하셨을까요? 혹시 우리가 한때 그곳에 머문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어 성경에서 ‘깊은 곳’에 해당하는 단어는 ‘바소스(Bathos)’입니다. ‘바소스’에는 ‘깊은’, ‘심오한’, ‘무진장’ 등의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닥의 심연’을 가리킵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누가복음 5장 5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립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그물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물고기에는 유효기간이 있어서 결국 소멸하고 맙니다. 그러니 밤새도록 그물을 내리고, 밤새도록 그물을 올려도 허전할 뿐입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세게 거머쥡니다. 물고기가 사라지면 다른 물고기를 찾고, 사라지면 또 다른 물고기를 찾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똑같습니다. 결국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솔로몬의 말대로 헛되고 헛된 것을 반복합니다. 후회하고, 아닌 줄 알면서 또 그물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돌아오라고 한 깊은 곳, 바닥이 없는 심연. 거기는 어디일까요? 이 우주를 통틀어 바닥이 없는 곳은 딱 하나뿐입니다. ‘없이 계신 하나님’ 그분에게는 바닥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로 가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로 다시 돌아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가 본래 거기서 왔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모두 아담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코로 ‘신의 속성’을 불어넣은 아담의 자식입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신의 속성이 있었듯이, 우리 안에도 신의 속성이 있었습니다. 다만 선악과로 인해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잠자는 심연, 즉 하나님의 속성으로, 그 깊디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