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배당인가?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이러할 거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추고 계실 거야.’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을 바탕으로 그려낸, 하나님에 대한 나름의 스케치가 있었습니다. 그 또한 우상임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에는 기도하는 유대인들로 가득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경전을 읽는 정통파 유대인도 보입니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만들어진 신’일까, 아니면 ‘만들어지기 이전의 신’일까. 요한복음서 1장 1절을 다시 펼쳤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그냥 있으셨습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시간 안에 종속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신’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빚어냅니다. 손에 잡히는 신, 귀에 들리는 신,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신’이 생겨납니다. 그러한 신이 바로 우상입니다.
나는 예수께서 심문받던 시각의 가야바 대제사장의 관저를 묵상합니다. 잡혀간 예수님이 있으시고,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습니다. 그 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신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포함해 관저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만 그 뜰에서는 예수님만 홀로 ‘만들어지기 이전의 신’을 믿었을 것입니다. 제사장도, 수석 사제들도, 최고 의회의 원로들도, 뜰에 몰려든 구경꾼들도 다들 ‘만들어진 신’을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와의 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됐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슬람이 세운 성전이 들어서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모스크는 이슬람교 3대 성지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예수님은 왜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하셨을까요.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유대인들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그들이 만든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에서 ‘만들어지기 이전의 신’을 만났습니다. 만들어진 신은 우상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을 만날까요? 바로 지금, 여러분들이 거한 여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순간도 우리가 사는 곳을 떠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일이 되면, 예배당으로 모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당에만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배당은 우리가 함께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가 가족 됨을 확인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목장은 작은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확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