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언어
저와 가까이 지내던, 이웃 동생이 있었습니다.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보다 야구 방망이로 아들을 다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이 둘 있었는데, 당시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저녁 9시 이후에는 게임을 하지 않아야 하는 집안 규칙이 있었는데, 어느 날 9시가 넘어서 퇴근했는데 큰아들이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말을 심하 게 더듬으며 화를 이기지 못하여 진공관 모니터를 주먹으로 내리쳤습니다. 진공관으로 된 모니터를 보던 시절이니 좀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주먹으로 쳐서 그 모니터가 깨질 리가 없고, 주먹만 아플 수밖에. 그러니 화가 더 치밀어오른 아버지는 컴퓨터에서 게임 CD를 꺼내어 가위로 잘라버렸습니다.
그때가 10월 말 때쯤으로 기억이 됩니다. 큰아들은 집안에서 가볍게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다가, 아버지가 CD를 가위로 자른 것에 분개하여 집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밤 10시 가까이 되도록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버지가 걱정되어 아내와 둘째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저는 이런 상담을 할 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않은 일인데, 저 스스로 생각을 해봐도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며 상담했을까?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날도 그러했습니다. 제가 그 아버지에게 던진 첫 질문은 “아들이 집을 나간 것이 처음이냐?”였습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제가 한 말은 “처음 나간 애는 갈 곳이 없어서 집에 꼭 들어와.”였습니다. 두 번 이상 나가는 아이들은 계획을 세우고 나가는 일이 많을 터인데, 얼떨결에 처음 뛰쳐나간 애들은 갈 곳을 예비하지 않고 나갔기 때문에, 보나, 마나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 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집에 가서 거실 전등을 끄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다음에, 아이가 집에 들어오면 절대로 꾸중하거나 때리지 말고, 두 마디 말만 하라고 해주었습니다. 첫째는, “미안하다.”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고 게임 CD를 자른 것만 생각하고 사과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화를 가라앉힌 아버지는 그다음에 무엇을 하느냐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들어가 자라.” 이 말 한마디만 더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다음 날 오후에 제가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였습니다. 집을 나갔던 아이는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얼마나 추위에 떨며, 거실 전등이 꺼지기를 기다리는데, 거실 등이 꺼지지를 않아서 새벽 3시 반쯤에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야구 방망이로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들어오는 아들을 향해서 일반적인 아버지들이 던지는 말은, “왜? 얼어 죽지 그랬니?” “갈 곳이 없더냐? 기어들어 오게.”입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제가 알려준 대로, “미안하다.” “들어가 자라.” 두 마디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후 학교에서 성적이 바닥을 치던 이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안산의 유명한 동산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대학에 들어가서 군대 복무 중에 휴가를 나왔다며 그 아버지와 함께 저에게 인사를 왔습니다. “미안하다.” “들어가 자라.” 이 두 마디가 그 아들을 살리고 세운 것입니다.
한국가사원장 이경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