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현실
30-40년 지나면 한국교회도 유럽의 교회들처럼 건물만 남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단순한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신천지의 민낯이 속속 밝혀지고 그들의 포교활동이 직격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개신교회의 신앙의 민낯도 함께 보여 지고 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대면예배에서 영상예배로 대체되면서 단순히 영적게으름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적나라하게 신앙의 현주소가 보여 지고 있습니다. 이미 과거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쏟아야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음을 가정교회 목회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폭탄이 하나 더 터졌습니다. 바로 ‘코로나19’입니다. 단 몇 달 만에 그동안 애쓰고 수고하며, 애가 닳도록 한 사람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 것 같은데 공든 탑 무너지듯 다 무너져 버린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요즘 마음이 더욱 아픈 것은 헌금이 줄고, 예배인원이 준 것 외에 ‘코로나19’로 인해 목회의 상황이 너무 급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폐허가 되다시피 한 기도생활과 예배생활, 목장사역을 다시 재건하는 일만도 벅찬데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목회의 상황이 답답하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합니다. 부정적이었던 영상예배나 온라인 헌금도 이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충격입니다.
하지만 가정교회는 신약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니 그 답을 신약교회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의 현실보다 신약교회들의 현실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음을 사도행전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세워지고, 수많은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보다 더 쉽다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사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교회의 존재목적은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입니다. 어떤 불가능한 상황과 환경에도 이 사명을 포기할 수 없고, 중단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다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의 임하심과 충만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