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험하는 문, 희생
사람은 누구나 정의롭게 살고 싶지만 마음뿐이지 죄성으로 인해 그렇게 살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결과로 생기는 것이 죄의식입니다. 나의 기준에 내 스스로가 미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책감은 결국 남을 향한 정죄적인 성품으로 발전합니다. 나뿐 아니라 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지키지 못하는 의로움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는 말씀은 오랫동안 죄의식으로 시달리던 저에게 단비와 같은 복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예수님이 또 다시 저에게 따라갈 수 없는 정의로움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실천하기도 어렵고 억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눈이 죄를 지으면 뽑아버려라. 죄지은 눈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눈 없이 천국 가는 것이 낫다.’ 은 죄짓고 눈을 뽑아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복음은 또 다시 나를 부자유스럽고 정죄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나로 실패한 크리스천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해에 불과하고 하나님은 끝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가정교회를 만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삶 공부에서 몰랐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 시작하고, 목장 안의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나의 실천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런 헌신의 삶이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믿음은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서 갖는 본질적인 죄의식이 아니라 자녀됨의 편안함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크게 경험하게 한 것은 내가 드리는 작은 희생과 포기를 통해서였습니다. 때로는 억울하지만 져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때로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어떤 것을 나에게 맡겨진 사역 때문에 포기하고, 때로는 조금 벅차다 싶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포기하는 그런 희생 끝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만나주셨습니다. 요즈음은 내가 손해를 보거나 내가 희생을 당하는 것을 못 견디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가장 바보 같고, 가장 현명하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갈수록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휴스톤 서울교회 이수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