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주는 유익(2)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고통의 문제는 신정론이라고 해서 늘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로 치부되곤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능하신데 왜 우리의 고통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만약 전지전능하신데 해결해 주지 않으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것이고, 만약 선한 것이 틀림없다면 그 분이 전지전능하지 않으시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른 각도의 설명이 보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스스로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는 분이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고통의 시작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이 가장 먼저 고통받으셨고, 가장 큰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왜 그런 고통이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까지 채워져야 할 의인의 고난의 분량이 있다는 것입니다(골1:24). 즉, 고통을 당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피하고 싶은 어떤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런 주님을 위한 고통에는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그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됩니다. 언젠가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고통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하루종일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울음은 그다음 날까지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잊을만하면 연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날이 수난절 예배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설교 준비를 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날 십자가를 설교하는데 늘 수난절 설교를 하면서도 그전에는 그날처럼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은 십자가의 고통이 저에게 깊이 다가왔습니다. 내가 아파보니까 비로소 하나님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끝에 헌신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고난이 필요하다면 제가 그 고난을 겪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마치고 일어났는데 모든 고통이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두 번째 고통의 유익은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씻어주어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지난 두 주간 피붙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기도 가운데 모든 회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눈물은 끊임없이 흘렀고, 나의 숨겨진 모든 면에 대한 성찰과 못다 한 감사와 미루어진 회개가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기도의 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늘 그랬습니다.
그리고 나니 내 영혼이 이토록 맑았던 적이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내가 주님 앞에 순수하게 서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고통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하는 특별한 선물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 휴스톤 서울교회 이수관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