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웃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나그네는 “허무함”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나그네란? “하늘의 상급”이 기다리는 “돌아갈 본향”입니다. 인간답게 “잘” 살자는 것도, 기준과 표현과 열매를 잘 모르거나 자기 나름의 기준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저 막연하고 좋은 뜻에서 “잘” 사는 것이 세상에서의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의 “잘” 산다는 기준은 성경에 있고, 그 성경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연습하다 보면, 신비하게도 진짜 “잘” 살게 되는 행복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한 해 동안 복 많이 받아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자식 잘되기”를 소원하거나 격려의 인사를 나눕니다. 그런 격려의 말이 나쁠 것은 없지만, 그런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새해 첫날 새벽,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빕니다. 그러나 그 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부터 매일 뜨고 졌습니다. 이 또한 공허한 말일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표현 중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축복의 언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 때, 그리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정교회를 하면서 늘 목장의 기도 제목들이 응답 되고, 그런 기도 응답을 목격하고 체험한 형제자매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거나 주님의 제자로 서는 간증과 체험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말씀하신 단어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이웃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웃도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이웃을 정의하는데 그 기준이 다 자기중심입니다. 내 입에 맞는 사람만이 이웃이요 친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는 이웃에 대한 개념이 나의 기준으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정의를 내려 주실 때, 강도 맞은 사람을 돌봐주는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눅 10:36).
우리에게는 다양한 이웃이 있습니다. 즉 우리를 좋아하는 이웃도 있지만 교회를 싫어하는 이웃도 있습니다. 주님은 마귀의 친구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우리를 친히 찾아와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같은 단어이지만 세상과 교회가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르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나가고, 그 다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서 공동체가 “같은 단어, 다른 의미”라는 분별력을 길러 나가야 할 것입니다. 형제자매의 허물이 내 눈에 보인다면, 그 허물을 지적하며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보다 그 형제자매의 허물과 부족을 채워 주라는 하나님의 초청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받을 조건이 있어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님을 기억하고 이웃의 필요를 보고 그 필요를 채우며 섬기시는 풍성한 삶이 가득한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미주 가사원장 김인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