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의 행복지수(09.1.4)

by 담임목사 posted Jan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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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가족이 함께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과속 스캔들: 차태현 주연”이라는 영화입니다. 바람둥이인 아버지가 어린 시절 책임 없이 낳아놓은 딸이 어느 날 아버지를 찾아옵니다. 혼자만 온 것이 아니라 딸 역시 아버지 없는 아들을 낳아 함께 데려온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당황스럽겠습니까? 결혼도 안한 자신에게 느닷없이 딸과 손자까지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영화를 볼 당시 많이 피곤했고, 그렇게 완성도가 높지 않은 영화다 싶어 초반에는 조느라고 깊이 보지 못하고 후반부분만 보았습니다. 어쨌든 영화를 보며 느닷없이 밀려오는 생각은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주신 성도들이 행복하게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깊은 상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행복 지수를 측정한 결과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 국민들의 행복 지수가 높고, 경제적으로 낙후한 국가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거꾸로 부자 나라 국민들 행복 지수가 낮았고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행복 지수가 오히려 높았습니다.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방글라데시였습니다.

  행복하냐 안 하냐는 인생의 기대치에 달린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적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순전 기독교’를 쓴 루이스(C. S. Lewis)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의 행복 정도는 인생을 호텔로 보느냐 포로수용소로 보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호텔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불편한 곳입니다. 인생이 기대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로수용소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편한 곳이랍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생각했는데 지금 너무 살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복지수가 높은 편입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배고픔을 느낄 만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청년기에는 어린 시절보다 더 극한 가난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행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녀들은 부모만큼 행복하지는 못합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기는 했지만 가난해 보고 배고파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감사함이 적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감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불평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차이는 기대치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갑니다. 자신이 누리는 축복이나 사역의 기회를 은혜로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고, 이것들을 당연한 권리나 혹은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평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에 축복과 은혜를 누리면서도 불행하다는 생각 속에 삽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래도 성도는 행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