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의 위로(Ⅱ)

by 동부중앙교회 posted Aug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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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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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4) - 인간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백만장자라 해도, 제아무리 절대 권력자라 해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 막상 마주하면 감당하기 벅찬 일, 그것이 바로 ()’. 슬픔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달리 말씀합니다. 슬퍼하는 사람들, ‘를 품은 사람들. 그들이 행복할 거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럴까요. 슬픔은 늘 상실을 전제로 합니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무언가를 놓쳤을 때, 누군가와 이별할 때 슬픔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슬픔의 바닥에는 상실의 강이 흐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상실감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왜 그랬을까?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 우리의 무릎이 꺾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릎이 꺾일 때 우리 안에 구멍이 뚫립니다. 슬픔의 구멍, 상실의 구멍입니다. 그런데 위로는 그 구멍을 통해서 옵니다. 내가 무릎을 꿇을 때, 나의 고집이 무릎을 꿇을 때, 나의 에고가 무릎을 꿇을 때 뚫리는 구멍을 타고 하나님 나라에서 밀려오는 근원적인 위로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고를 빳빳이 세운 채 스스로 무릎을 꺾지 않은 이에게는 위로가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의 내면에 슬픔의 구멍, 상실의 구멍이 뚫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복음 55) - 온유하지 않은 이들은 누구일까요. 고집이 센 사람들입니다. 고집이 뭘까. 내가 세운 잣대의 성벽입니다. 사람들은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습니다. 그 성벽이 자신을 적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군에게는 성문을 열고, 적군에게는 성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다릅니다. 그건 성벽이 아니라 감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은 온 우주에 가득한데, 이를 외면한 채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복음 56) - 의로움이란 뭘까요? ‘의로움은 히브리어로 체다카(Tzedakah)’입니다. ‘어떤 기준에 부합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부합될 때 의롭다고 했을까요? 또 무엇에 목마를 때 의롭다고 했을까요. 예수께서 강조하는 단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속성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사람입니다. 그에 부합하는 사람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행복하여라. 하나님의 마음에 주리고, 신의 속성에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함을 얻을 것이다.”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