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의 심복이라

by 담임목사 posted Jan 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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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빌레몬서 1:12에서 오네시모를 “저는 나의 심복”이라고 했습니다. 오네시모는 한때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빌레몬에게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만나 회심을 하고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심복이란 “부하”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냥 부하가 아니라 상관을 존경하고, 상관의 마음과 통하는 충성스런 부하를 뜻합니다.

  주님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마 24:45) 한마디로 하면 “나의 심복이 누구냐?” 입니다.

  정치세계에서도 “복심”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누구누구는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이니, 누구누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사실상의 대변인이니 하는 말들이 오고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들의 말이나 행동은 곧 상관의 말이나 마음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보통의 종들과 심복들의 일처리는 똑같지 않습니다. 보통의 종들은 시키는 일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마지못해 하거나 오만상을 찡그리고 온갖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일합니다. 마치 한 달란트를 가진 종과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 다 주인 것이 될 텐데! 만약 실수해서 빚이라도 진다면 주인은 그 빚을 내게 전가 할 텐데! 하지만 심복은 다릅니다. 주인의 일이 아니라 내 일입니다. 사명에 충만해 있고, 주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고, 주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하나 희생하는 것은 별일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주의 심복은 주의 일을 생명과 인생을 드림이 아깝지 않은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못해 일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심복들은 다소 맹목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 심복들은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사역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행복과 영혼들의 행복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와 천국의 확장을 봅니다. 악한 역사가 멸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도래하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단순한 사역자들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단 몇 명이 되었든 주의 심복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사역자들에게 많이 고맙고 감사하지만 만족할 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