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가 ‘율법주의’인가? (2016. 6.12)

by 관리자 posted Jun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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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가 ‘율법주의’인가?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전쟁의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이라는 대제사장에게 드린 것이 십일조의 시작입니다. 
그러다가 구약에서 헌금은 크게 두 가지로 정착하게 됩니다. 하나는 계절마다 수확한 첫 소산물, 혹은 짐승 등의 첫 새끼 등을 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헌금(헌물)의 주제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종종 십일조가 율법의 산물에 불과하며, 지금은 은혜의 시대요, 신약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안 드려도 된다고 하는 학자들이 있 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영향을 받아 십일조 생활을 안 하시 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고 변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약시 대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주인이시며, 모든 우주만물과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에 대하여 하나님은 “나의 것”이라는 표현을 하셨습니 다.(신 14:22-23)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 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 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마 23:23)  
  유대인들은 각기 다른 세 종류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첫십일 조는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과 성전관리를 위해, 두 번째 십일조 는 구제를 위해, 그리고 삼년마다(신 14:28-29) 드리는 십일조는 가난한 떠돌이들을 위한 구제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의 십일조는 거의 수입의 23%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십일조는 성전에 드리는 십일조와 선교나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드렸습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은혜로 구원받았는데 은혜로 사는 삶이 율법의 삶을 넘지 못하면 그것은 은혜를 빙자한 이기주의이고, 욕심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신앙의 정점이나 헌금의 정점이 아니라 시작이 고 기초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결단하고 시작함으로 인해 뭔가 신앙의 큰 전환점이 된 분들이 많습니다. 의무감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상이 있습니다. 또한 더 깊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더 깊은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은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