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비극

by 담임목사 posted Nov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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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침체와 실업이 공포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도 복지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미래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표를 의식해서 복지에 더 많은 재정투자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경적적인 어려움과 불황이나 실업이 없었을 까요? 아닙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때가 있었고, 앞으로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을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누가복은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탕자는 기어코 아버지의 뜻이 아님을 알고도 자신의 뜻을 관철하여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부유해진 그는 당시의 기근이나 사람들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상관없이 호위호식하며 마음껏 살았습니다. 하지만 허랑방탕한 삶으로 인해 그는 재산을 허비했고, 결국 그는 돼지의 사료로 쓰이는 쥐엄 열매조차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형편의 나락에 빠져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뵐 낯이 없지만 아들이 아닌 아버지의 품꾼의 하나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품꾼이 아닌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귀한 아들로 맞아 주었습니다. 오히려 가락지를 끼워주셨고, 새신을 신기고 새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리고 송아지를 잡아 온 동네잔치를 베풀었습니다.

 -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어려운 환경이나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음을 불평하고 염려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탕자의 불행의 시작은 아버지가 원치 않았던 소원이(기도응답)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기근 때문이 아니라 허랑방탕한 삶 때문이었고, 더 근본적으로는 아버지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기근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 온 이후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도의 불행과 고통은 환경이나 상황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함께 하고 도운다면 아무 염려 없는 자녀처럼 성도의 삶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