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진 특권

by 담임목사 posted Mar 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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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수많은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동생 탕자와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불만과 불평이 많았던 형과의 차이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형의 불만은 창기와 함께 재산을 말아 먹고 돌아온 동생을 환영하고 잔치까지 베푼 아버지의 행동이전부터 있었을 것입니다. 왜 동생에게 재산을 나눠주시는가? 망할 줄 뻔히 알면서 아버지는 왜 동생이 집을 나가도록 방관하시는가? 등등.

  반면에 패가망신을 하고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탕자는 커다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었음을 안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는 두 아들 뿐 아니라 집안을 돌보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예들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저들이 노예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집에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탕자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을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아버지 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실패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형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이 사실이 이미 특권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수고하고 애쓰는 자신을 아버지가 알아주지 않는 다고 불평하고 원망한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비극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버지 하나님을 떠남은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 특권이 아니라 간섭이요,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 가는 것이 특권이라는 생각보다 오히려 자신이 누리던 자유와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 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은 이미 특권을 누렸고(요1:12), 지금도 그 특권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누리는 특권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신의 헌신과 수고를 하나님이 알아주시지 않는다고 불평입니다. 그러면 어쩔까요? 탕자처럼 아버지 곁을 떠나봐야 할까요? 그래야 깨달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