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오늘은 말씀을 볼 때 많은 질문을 가지고 묵상하라는 말씀을 하려 합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놀랍고,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것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살았고, 활력이 있고, 예리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마음의 깊은 곳을 꿰뚫어 판단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왜 이렇게 힘없고, 지루하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믿음의 길을 가는가?
또 요 8:32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하셔서 틀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틀을 버리시고, 인간이라는 옷을 입으시기도 하셨고,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가장 낮은 자을 향해 사랑을 흘려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자유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리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다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넣기도 하고, 우리의 믿음을 집어넣어서 이 틀에 맞지 않으면 죽일 놈이 되고, 실제로 중세시대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이라는 원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작가이고, 설교가이기도 한‘토마스 캠벨’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 본질에는 자유를, 범사에는 사랑을!”
-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에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 충분히 논의하되 어쨌든 일치를 봐야 합니다. 하지만 진리가 아닌 것에는 각각을 인정하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서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진리에는 치열한 질문과 정말 그런가하는 묵상이 없이 무조건 아멘하고 무조건 믿되 일치함이 없이 자기 멋대로 믿습니다. 그런데 진리가 아닌 것에는 생명을 겁니다. 판단하고 정죄하고 고집을 피웁니다.
- 우스갯소리로 ‘ㄱ’자로 시작되는 고집스럽고, 전혀 변화도 없는 집단 4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1. 공무원, 2. 군인, 3. 교육자(교사, 교수), 4. 기독교, 혹은 기독교회(교인) / 그래서 늘 이 4집단은 개혁의 대상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고, 자유한데 우리는 왜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질문과 생각 없는 믿음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일치가 되면 여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기도:“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으면 자유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규칙과 교리 안에 말씀을 가두고, 오히려 비 진리에 생명을 겁니다. 용서해 주시고 정말 진지한 질문과 생각으로 말씀 앞에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