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우리에게“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 30) 하셨습니다. 여행의 짐이 무거운 것은 잠시 힘들면 되는데, 인생의 짐이 무거우면 평생 괴롭고 힘이 듭니다. 행복과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지난 주 부터 몇 주간동안 시편 23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짐을 가볍게 덜어 내기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에 관해 나누려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23편은 거의 만병통치약 같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의 병이든, 상처이든 이 말씀을 발라주면 시간문제이지 틀림없이 치료가 됩니다.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이 말씀을 들려주면 죽음의 공포가 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주님께 죽음의 길을 맡기며 평안해 집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이 말씀을 통해 평생 하나님을 거절하며 살던 분이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비로소 모셔 들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 임종의 길에서 악한 영의 사나운 포효로부터 두려움을 막는 방패로 씁니다. 우리의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산다는 의미를 주님은 “내게로 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내 인생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양은 먹거리, 마실 거리, 잠잘 곳을 스스로 준비하지 않습니다. 목자가 풀밭으로 인도합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울타리를 치고,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물론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 십 년 여행의 경험에서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고 알면서도 여전히 또 바리바리 짐을 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짐이 작아지고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이 좀 더 즐거워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의 기도생활 속에서 잠시 만이라도 하나님께 내게서 무슨 짐을 내려놓으면 좋을지 여쭤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이 짐을 아버지께서 맡아주실 것을 요청 드리십시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인생의 짐은 가벼워지고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은 좀 더 커져 있을 것입니다.
* 제가 어떤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커다란 나무 가지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부리한 눈으로 저를 날카롭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저에게 달려들어 저를 어떻게 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금방 두려움을 내려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독수리인 것은 맞지만 죽은 독수리를 박제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삶의 짐들은 99%가 다 가짜입니다. 너무 그럴듯해서 나를 금방이라도 어떻게 할 것 같고, 어떤 놈은 하나님보다 더 두렵고 능력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 박제된 독수리 같은 것들이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우상 같은 것들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바로 “야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목자라고 했는데, 모든 목자가 다 유능하고, 책임감 있고, 양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을 잡아먹는 목자도 있고, 대충 무책임하게 양을 치는 삯군 목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야훼’이시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일컫는 단어가 많습니다.엘 샤다이(전능하신), 엘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엘 올람(영원하신) 등등 하지만 이는 정확한 하나님의 이름은 아닙니다. 정연홍 목사를 부를 때 누구누구 아빠. 목사님, 누구누구의 남편, 이렇게 부를 수 있지만 제 이름은 아닙니다. 제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려면 ‘정연홍’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신 것은 모세가 최초입니다. 다윗보다 700년 전의 사람입니다. 이집트 땅에 식민으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모세는 누가 보냈느냐고 이스라엘백성이 묻는 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야훼”가 보냈다고 하라 하셨습니다.
‘야훼’란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존재한다, 존재케 한다, 나는 ∼이다. 이런 뜻입니다. 자존하시 되, 영원하시고, 변치 않으시며, 창조 하셨으되 창조되지 않은 분, 제한을 받지 않는 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 ‘아도나이’즉 주님이라고 불렀고, 부득불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할 때는 목욕 재개를 했고, 기록한 붓은 꺾어 버려서 다시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1,000억 개의 별을 가진 은하수가 1,000억 개나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분이 나의 목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