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이웃과 주말에 파티 하는 것을 좋아 합니다.하지만 우리처럼 거창한 파티가 아니라 가정마다 한 가지 음식을 해가지고 와서 나눠먹는 조촐한 파티입니다. 물론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때에는 거창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 예를 들면 한 가정이 자신의 집으로 이웃을 초청을 합니다. 그러면 각 가정은 자신의 정통방식으로 만든 쿠키 같은 것을 한 접시 가져와서 서로의 것을 나눠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음식이 주제가 아니라 교제가 주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것조차 부담인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혼자이고, 전혀 음식을 만들지 못하고, 크게 내성적이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담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웃의 누군가가 그런 사실을 눈치 채고 음식을 한 접시 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친히 함께 가도록 집까지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는 이웃의 이런 작은 배려와 선물로 인해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도 당신의 집으로 온 인류를 초청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려면 딱 한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의로 만든 파티 옷입니다. 가난해도 괜찮고, 공부를 못했어도, 말이 많아도, 무슨 작은 성공조차 이룬 적이 없는 사람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꼭 의로 만든 옷은 입어야 입장이 됩니다.(마 22장)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하나님의 집도 의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롭지 않으면 아예 입장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롬 3;2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의라는 옷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할 처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많은 사람들이‘나는 완전한 사람은 못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람을 죽였나 강도질을 했나 사기를 쳤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방을 깨끗이 치우지 않으면 내일부터는 아침을 굶고 학교가야하고, 내일도 안치우면 아예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자 아들이 어머니 손을 붙잡고, 형의 방으로 데려갑니다. 더러운 것은 똑같은데 형한테는 뭐라고 안하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느냐는 시위입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아들을 데려갔습니다. 깨끗하고 정돈되고, 향기로운 냄새까지 났습니다. 어머니는 ”이집의 주인은 형이 아니고 나라는 것을 명심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초청은 의인을 위한 자리인데 우리는 가고 싶어도 안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벧전 3:18) 무슨 의미입니까? 초청에 응하기만 한다면 주님께서 의의 옷을 다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늘 3절에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했습니다. 양은 홀로 결코 의의 길을 찾지도 갈 수도 없지만 목자가 인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