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 17:4-6말씀의 배경 :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이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성이나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돌을 들어 모세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5.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였다.”
-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무심코 지나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를 치라고 명하시기 전 먼저 그 바위 위에 서시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상황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고전 10:3-4에서 “3.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먹은 만나와 바위에서 흘러나온 물이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장차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해 찢기신 살과 피와 같이 인간이 휘두른 지팡이에 맞으신 예수님의 희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라고 했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운행자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오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희생하고 계십니다. 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실까요?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이런 신이 존재하나요?
* 내가 누군가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는 경우를 ‘피택’이라고 합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피택하셨습니다.계시록 3:20에 “보아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먼저 우리를 피택하셨기 때문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오늘 본문에 12제자 중 일부인 4명의 제자가 주님의 부름 심을 받는 당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지 않았다면 이들은 평생 갈릴리 어부로서 살다가 그렇게 갈릴리 어느 야산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이들을 주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즉 제자로 피택하셨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지나지 않은 나를 선택하시는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운명이 바뀝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악한 영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됩니다.
누군가 부모와 자녀로 관계가 성립되려면, 두 가지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혈연이고, 또 하나는 법률적인 관계가 정리되어야 합니다. 혈연은 맞는데, 법적인 정리가 안 되면, 그것을 사생아라고 부릅니다. 소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혈연으로는 안 되지만 입양을 하고, 법적으로 정리를 하면, 물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성립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한인 아이를 입양할 때, 많은 경우 자신의 재산은 상속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아 입양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실질적인 자식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피택하시고, 우리를 천국 시민권자로는 구원하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로는 선택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혈연관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예 피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 3:26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안에 두심으로 더럽고 죄 된 우리의 피를 당신의 피로 바꾸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요 1;12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녀로 표기된 말씀이 그리스어로 ‘휘오스’입니다. 즉 법률적인 관계로서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로는 혈연관계를(롬 5:8), 믿음을 통해서는 법률적인 관계를 해결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