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말씀 상고: 내가 누군가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는 경우를 ‘피택’이라고 합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피택하셨습니다. - 지난주 말씀 마 4:18-22에 12제자 중 일부인 4명의 제자가 주님의 부름 심을 받는 당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지 않았다면 이들은 평생 갈릴리 어부로서 살다가 그렇게 갈릴리 어느 야산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이들을 주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즉 제자로 피택하셨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지나지 않은 나를 선택하시는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운명이 바뀝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악한 영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됩니다.
누군가 부모와 자녀로 관계가 성립되려면, 두 가지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혈연이고, 또 하나는 법률적인 관계가 정리되어야 합니다. 혈연은 맞는데, 법적인 정리가 안 되면, 그것을 사생아라고 부릅니다. 갈 3:26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안에 두심으로 더럽고 죄 된 우리의 피를 당신의 피로 바꾸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요 1;12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녀로 표기된 말씀이 그리스어로 ‘휘오스’입니다. 즉 법률적인 관계로서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로는 혈연관계를(롬 5:8), 믿음을 통해서는 법률적인 관계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피택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보이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돈이든 명예이든 재산이든 성공이든 반드시 사라지는 날이 옵니다. 왜냐하면 쇠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영원을 사모하는 것이고, 영원에 목표를 두고 사는 것입니다.
-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리는 ‘마사 그레이엄’은 1991년 91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작품을 구상하고 가르치고, 직접 무대에 서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의사였던 아버지가 어느 날 그레이엄을 불러 컵 속에 물을 보라고 했습니다. 수정처럼 맑고 잔잔한 물이었습니다. 이어 아버지는 그 물 한 방울을 현미경에 놓고는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현미경으로 보는 그 물속에는 수많은 세균이 득실거릴 뿐 아니라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깨끗함과도 거리가 멀고, 고요함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레이엄! 너는 표면적에 드러난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표면 아래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웃는 얼굴 뒤에 슬픔이 있습니다. 품위 있어 보이는 얼굴 뒤에 위선이 있을 수 있고, 친절 속에 감춰진 증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지해 보이지만 숙박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레이엄은 숨겨진 진실을 어떻게 드러낼까 고민하다가 표현의 방법으로 무용을 선택했지만 고전 무용인 발레가 자신의 표현에 한계가 많다고 생각해서 고전발레의 틀을 깨며 자유롭게 무용을 한 것이 현대무용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은 영원을 주시고, 또한 영원한 삶을 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 중 무엇이 있을까요? 세 가지만 생각해 보면,
첫째,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만원을 가진 자는 10원으로부터 자유합니다. 금반지를 가진 자는 구리반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임을 정말 확신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천국 시민권자 임을 정말 확신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 할 뿐 아니라 자유함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단 하나도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코넬이 작사한 찬송 412장의 가사 중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평화가 내 맘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평화는 오직 하늘에 있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영원을 소유한 자가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 하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를 맘속에 소유한 사람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빌 4:4-6)
마지막으로 세월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이는 60을 넘고, 70을 넘어도 마음은 20대라고 하는 말을 멋있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이와 함께 마음도 함께 가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너그러워지고, 경륜도 깊어지고, 삶에 지혜도 많아지고, 주님도 더 많이 닮고. 그런데 20대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남을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영원을 소유한 사람은 세월에 자유하고 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