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백성 가운데서 미련한 자들아, 생각해 보아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언제나 슬기로워지겠느냐?
9. 귀를 지어 주신 분이 들을 수 없겠느냐? 눈을 빚으신 분이 볼 수 없겠느냐?
10. 뭇 나라를 꾸짖으시는 분이 벌할 수 없겠느냐? 뭇 사람을 지식으로 가르치는 분에게 지식이 없겠느냐?
11. 주님께서는, 사람의 속생각이 허무함을 아신다.
* 시편기자는 본문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귀를 지어 주신 분이 들을 수 없겠느냐? 눈을 빚으신 분이 볼 수 없겠느냐?”-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귀를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분이라는 의미이고, 눈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말이고, 입을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듣지 못하며, 보지 못하느냐고 반문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 2:6-8에서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으로 낮아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와 이야기하시고, 교제하시기 위해서라면 분명 낮아지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이야기 하고 교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친구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이야기 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말씀하시고, 때로는 들을 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서로 듣지 못하고, 서로 딴소리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혹은 관심이 다른 곳에 있다면 듣지 못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의 귀 주변에는 수많은 소리가 스쳐지나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귀는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있어서 너무 높아도 듣지 못하고, 너무 낮아도 듣지 못합니다. 또 어떤 소리는 아주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세미한 소리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들어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막 4:23-24) 정말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온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더 낮아지시고, 우리가 듣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질문해 보십시오.나는 듣고 싶은데, 하나님은 왜 말씀하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때로 아무것도 말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