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은 바울이 다메섹(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나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더불어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가록되어 있습니다.
- 주님은 바울이 구원을 받은 사실과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실에 대해 결코 바울 개인의 경험으로 놔두시지 않고 다른 공동체의 일원을 통해 객관적인 증거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에게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6절) 그리고 이어서 10, 11절에서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했습니다.
- 얼마 전에 나누었던 민 11장에서 이스라엘민족이 고기문제로 불평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게 하고, 그들에게 입에서 고기냄새가 나서 질리도록 고기를 먹게 하겠다고 하셨을 때, 두려움 속에서 그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참여하지 않았던 “엘닷과 메닷”이라는 지도가 자신의 처소에서 예언하는 장면을 본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면서 이들의 예언을 막아야 한다고 하자 모세는 “나는 오히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예전에 지방회 한 목사님에게 가정교회를 권면했을 때, 자신도 하고 싶지만 두렵고 겁나는 것이 있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정교회를 하려면 담임목사의 많은 권위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럴 자신도 없을 뿐 더러 지금도 성도들이 담임목사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데, 권위를 위임하면 얼마나 더 기고만장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걱정했던 부분도 같은 맥락입니다. 엘닷과 메닷의 예언을 막으려 했던 이유도 행여 백성들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권위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뜻에 함께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물론 하나님께서 지도자에게 가장먼저 말씀하시고, 지도자를 통해 일하심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도자 홀로 일하도록 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성도들에게도 말씀하셔서 지도자에게 주신 말씀을 확인하게 하시고, 그래서 그들로 후원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 예를 보면, 주님께서 안디옥교회의 바울과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안수하실 때, 안디옥교회 공동체 전체가 이 일에 동의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의 누군가를 목회자로 부르실 때, 가장 먼저는 당사자에게 부르셨음을 알립니다. 그러나 반드시 교회공동체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공증절차를 거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당자사자와 교회공동체를 거치지 않고 어떤 특별한 사람, 소위 기도를 많이 하거나, 혹은 예언의 은사 같은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말은 사심이 들어 있는 거짓일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인 하나님의 교회의 질서 안에서 일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군가 교회에서 방언을 하면, 누군가 방언통역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질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든지, 혹은 어떤 부름심을 받았다면 교회공동체 가족을 통해 공증이 필요합니다. 공동체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