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에서 부주의로 물잔을 엎었습니다.그런데 이게 친구나 가족 같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만약 왕이 식탁에 앉았다면 문제가 다릅니다. 왕 앞에서의 부주의는 곧 불경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갈 사항이고, 때로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왕 앞에서 부주의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왜일까요?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필자는 밭과 포도원이 있는 농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밭과 포도원에 풀과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가득하고, 돌담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분명 주인이 있는 밭이었고, 포도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밭에서 나는 곡물은 양식이고, 포도원의 포도는 물 대신 마시는 포도주의 재료입니다. 이 귀중한 농토가 풀과 엉겅퀴와 가시덤불로 가득했다면, 이 농부는 게으르고, 지혜가(생각)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잠 24:30절)
-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특별히 기도의 삶이 안 되는 것은 분명 영적인 게으름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거나 기도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까? 그저 게으르면 저절로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가 바빠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부주의는 없습니다. 어쨌든 집중하지 못하는 게으름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면 실수가 용납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주의 즉 실수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부주의와 나태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됩니다. 영적인 삶, 특히 기도의 삶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부주의할 수 없고, 나태할 수 없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 한 사람이 갈림길에 들어섰습니다.넓고, 좋아 보이는 길 입구에 푯말이 서 있었습니다. “목적지까지는 약 10km이며, 5km 구간부터는 좁고, 구불거리며, 돌바닥입니다.” 그리고 다른 좁고, 험해 보이는 길 입구에 푯말에는 “목적지까지의 길이는 12km이며, 3km가 지나면, 이후 나머지 길은 넓고, 평탄합니다.” 어느 길로 갈까 고심하다가 보기 좋고, 넓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넓고, 평탄한 길이 보이기 때문이고, 목적지 까지의 길도 2km나 짧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잘못된 길을 선택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본문의 문체의 규칙상으로는 ‘게으른 자’가 나왔으니 ‘부지런한 자’가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데, 개정판 성경에는 ‘정직한 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게으름을 부정직함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게으른 자는 이 길이 그릇된 길임을 알면서도 단지 쉽다는 이유로 혹은 넓다는 이유로,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직한 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예상되고, 손해가 예상되어도 옳은 길을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 “게으른 자는 꿈을 꾸지만, 일하는 자는 꿈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기도해야지, 올해는 헌신해야지, 올해는 제대로 십일조 생활을 해야지, 올해는 꼭 한 명 전도해야지, 등등 계획은 세우는데, 그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결과나 응답이 확인할 방법이 없는 추상적인 계획이나 기도가 많습니다. 각오가 산 같아도 실천하면 언젠가 언덕이 되는 날이 옵니다. 하지만 각오가 칼 같아도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없으면 칼등이 됩니다. 두부 하나도 썰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일주일에 4번 새벽에 나가겠습니다. 기도 시간은 새벽 6~7시까지, 위를 위해 한 시간 일찍 자겠습니다. 그리고 일찍 자기 위해 tv 시청 시간도 1시간 줄이겠습니다.” - 게으름과 섬김, 이 두 단어는 처음부터 나란히 놓일 수 없는 단어입니다. 게으름은 기도의 섬김, 헌신, 전도, 사랑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 인생은 유일하게 하나님이 형상을 닮은 피조물로 창조되었습니다.이런 인간이 목적 없이 창조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차이가 없다면, 가정에서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없다면, 직장에서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없다면 정말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이 있어 나를 창조하셨고, 그러므로 나는 의미 있는 사람이고, 내 삶이 의미 있다면, 어찌 게으르게 살아야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히 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