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나눈행 20:13-16 말씀은 행 20:22-24말씀의 배경이라고 했습니다. - 에베소 교회에서의 약 3년간의 사역을 마지막으로 약 13년간의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이 끝이 납니다.바울은 예루살렘과 자신의 본거지인 안디옥교회를 방문하여 그간의 전도 여행의 결과에 대해 보고하고, 자신의 마지막 삶을 로마로 가서 전도함으로 끝을 맺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기도하는 분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투옥과 환란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바울은 주님과 뭔가 담판을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도대체 가라는 말씀인가,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씀인가? 그래서 드로아에서 그동안 함께 했던 동역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앗소로 가면, 자신은 걸어서 앗소로 갈터이니 앗소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드로아에서 앗소 까지는 65km로 걸어서 사흘길입니다. 노쇠하고, 병든 바울이 동행자도 없이 걷는 다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하물며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까지 있습니다. 동역자들과 의사 누가가 얼마나 말렸겠습니까? 아니면 자신들도 동행하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을 단호했고, 아예 명령을 내렸습니다. ‘앗소에서 만나자!’
바울은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우며, 위험한 길을 굳이 가려고 했을까요? 사흘간 걸으며, 주님과 깊은 교제와 기도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정말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고, 순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위험이나 환란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가 정말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5km의 길을 걸으며, 묻고 또 물으며 마침내 결정을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나는 환란과 투옥이 기다린다 하여도 가겠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고발을 당하여 죄명도 없이 빌립보 가이사랴에 2년간 투옥이 됐고, 결국 로마 황제에게 재판받기 위해 로마로 가게 됩니다. 주께서 바울을 선택하셨을 때, 선지자 아나니아는 ‘왜요?’라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주님의 선택과 결정은 한치도 틀림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의 순종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오늘 본문은 침례요한이 옥에 갇힌 후의 이야기입니다.헤롯 대왕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들 셋에게 나라를 셋으로 쪼개어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주로 사역하시던 갈릴리지역은 해롯 대왕의 아들,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헤롯은 동생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아 결혼했습니다. 이 사실을 비판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헤롯은 유대인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사도 야고보를 목 베어 죽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든 지요.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잡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형선고 전날 밤, 군병들이 지키고 있고, 쇠사슬에 매였으며, 옥문마저 단단히 닫힌 상태였지만 아무도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을 모를 정도로 베드로 사도를 감옥에서 끄집어냈습니다.
- 이 사실을 감옥에 갇힌 침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같은 주님의 사역자인데, 베드로 사도는 기적으로 감옥에서 끄집어내시고, 자신은 감옥에 그대로 두시다니, 섭섭한 마음이 든 것인지 아니면, 시험에 든 것인지, 제자를 주님께 보내어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물어 보게 하였다."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 11:2-3)"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6절에서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시고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침례 요한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로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봤고, 심지어 예수님께 침례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한 것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역자요, 주님의 동역자인데 베드로는 감옥에서 끄집어내셔서 사형을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이 비교의식에 침례요한이 걸려 넘어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제자라고 특별히 편견 하시나?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 주님은 그런데도 불구하고,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 침례 요한보다 더 큰이가 없다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침례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약 16년간의 기나긴 칩거에 숭종했던 것처럼, 요한 사도가 어머니 마리아의 봉양에 순종했던 것처럼, 내일 사형선고를 앞두고도 주님이 가라하시면 가는 거지 하며, 감옥에서 깊이 잠든 베드로처럼, 어떤 길이든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