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주기
예수님은 갈릴리호수 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특히 사역의 초기에는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역과 더불어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자 소문이 삽시간에 지금의 레바논과 터키, 시리아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주님의 치유사역을 보면서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왜 애초에 병들지 않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환경을 만드시지 이렇게 병과 고통 속에 시달리게 한 다음에야 치유해 주시는가? 사람이든 짐승이든 어렸을 때에는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들이 먹이사슬에 의해 약육강식의 대상이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왜 이렇게 예쁘고 연약한 이들이 잔인한 먹이사슬의 대상이 되게 하셨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종말의 때가 지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지금의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공존하는 환상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의문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은 왜 지금이 아닌 새로운 시대에 가서야 약육강식을 해체하시는가?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이런 세상을 왜 만드시지 않으셨는가?
대단히 논리적이고 지적인 질문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무지와 창조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영원한 존재요 불행과 고통 없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식동물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풀과 열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창조의 원리를 부정하고 무시하고 깨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탐욕스런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치유의 사역을 통해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이사야가 증언한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해체된 새로운 세상의 도래는 인간에 의해 깨어진 평화와 행복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사랑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그 아름답고 평화롭고 따뜻한 그 시간으로의 회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