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바르지 못하면
애초에 질문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 대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십일조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일조 생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이렇게 질문하면 바른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예 십일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십일조 생활은 동의하겠는데 방법이 없다는 뜻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십일조생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아예 질문이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십일조 생활은 하고 싶은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예상되는 난관이 있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힌 것이라면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서 십일조 생활이 어렵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면 몇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자신은 신앙이 없어도 아내의 신앙과 삶은 인정하는 남편이라면 동의아래 십일조 생활을 하는 방법,
아니면 자신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물질 가운데서 십일조 하는 방법,
그도 아니라면 여러 가지 갈등의 요소가 예상되지만 감수하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마땅히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결정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같습니다.
생명의 삶을 공부하면서 어떤 문제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문제를 두 가지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부분을 나눠보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실행에 옮기고
남은 부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실행하지 않거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문제를 자신이 붙들고서 기도하지 아니하고 고민하고 염려하거나 원망하면서 “하나님, 저에게 왜 그러세요?”한다면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마 약속함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하면서 “하나님은 정말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일까?” 이 또한 질문이 바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