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마십시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딤전 2:2-4).
시대마다 직분을 세우는 중요한 조건들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현대교회는 외형적인 신앙생활의 조건들을 더 중요히 여기는 것 같고, 초대교회는 십일조나 주일성수 같은 외형적인 신앙생활보다 인격이나 삶을 더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교회에 헌납하고, 자신의 물질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것을 당연시 할 만큼 물질적인 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초월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금생활이 직분의 조건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나 돈은 인간에게 중요하고 하나님과 맞바꿀 만큼의 매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돈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위치에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입에서 10억의 돈을 소유할 수 있다면 10년간 감옥에 갔다 올 용의가 있다. 할 정도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회개를 믿을 수 없다”했습니다. 철저한 예배생활, 십일조 생활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신앙인이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배생활, 헌금생활이 바르지 않는 성도가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는가? 하면 그 또한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예배생활, 헌금생활이 바른 신앙인 가운데에서 좋은 신앙인이 나오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인격적 요소와 더불어 예배, 기도, 헌금(십일조), 그리고 삶 공부과정 이수 등이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사역에 필요한 수만큼만 세운다는(침례교단의 전통은 안수집사는 약 30-50명 교인에 1명, 서리 집사는 10-20명 교인에 1명 등) 조건도 갖고 있습니다. 집사의 직은 필요에 의해 섬길 사람을 뽑았던 것이지 승진이나 명예를 나타내는 직이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주지는 않습니다. 재산은 모두에게 물려줄 수 있어도 경영권만큼은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물려줄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모든 성도를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러나 직분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랑의 문제가 아니고 헌신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