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의 수용능력
- ‘성숙’을 ‘애매함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ability to live with ambiguity). 나이가 어리든지 미숙할 때에는 흑백 논리에 지배를 받습니다. 옳든지 그르든지, 맞든지 틀리든지, 둘 중의 하나라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견이든지 한 쪽이 절대적으로 맞고 다른 쪽은 절대적으로 틀리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경륜이 쌓이면서 양쪽을 다 보게 되고, 양쪽 다 일리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수용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사역에도 이러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 본질 회복과 교회 성장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입니다. 이것 외에도 가정교회 사역 도처에서 긴장감은 발견됩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존재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위임입니다. 가정교회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을 신뢰하고 과감하게 목양권을 위임해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서둘러서 위임하면 방치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양육도 마찬가지입니다. VIP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아니하고 계속 섬겨주기만 하면 이들은 영적인 어린이로 머물게 됩니다. 제자를 만들라는 예수님의 대 사명에 위배됩니다. 그러나 이들을 지나치게 푸시하면, 낙망해서 주저앉거나 압박감을 느껴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만큼 기다려주고, 얼마만큼 푸시하느냐? 여기에 매뉴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저와 목자들이 많이 겪는 긴장감이 기신자 등록 거부에 관한 영역인 것 같습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신자 등록을 막아야합니다. 모여드는 기신자들을 관리하려다 보면 비신자 전도에 부어져야 할 에너지가 고갈되고, 이렇게 유입된 사람들은 제자 되기를 거부하고 가정교회에 비판적인 세력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아쉬운 작은 교회에서 기신자 등록을 무조건 거부하면 신약 교회 회복의 좋은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놓치게 되고, 인적 자원의 결핍으로 인하여 제자 만드는 사역이 힘들어집니다. 모든 것을 원칙으로 하되 어느 한 쪽을 무시하지 않고, 적당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신약 교회 회복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동역자들로 받아드리는, 애매하면서도 성숙한 자세가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