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찢으라.
옛날 어떤 선교사가 오지에서 식인종에게 잡혔습니다. 이젠 꼼짝없이 죽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추장이 갑자기 포박을 풀어주고는 아주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명문대학의 동문이었습니다. 선교사가 안 죽고 살았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어떻게 명문대학에서 배웠다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할까? 의문이 들어서 어떻게 대학 공부까지 한 사람이 이렇게 무지하고 짐승이나 할 짓을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추장이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지한 자들은 날것을 먹지만 우리는 잘 익혀서 먹는다네.”
물론 웃자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그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지식이 오히려 야만의 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신앙이 단단해지면 얼마나 답답한 독선이 됩니까.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의 신앙이 뜨거워지면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아귀처럼 탐욕스러운 존재처럼 되고 맙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사순절이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회개로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회개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언자 요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욜2:13, 새번역).” 사람이 진정으로 바뀌는 능력은 주님의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구원은 ‘예수 믿고 천국 간다.’ 가 아닙니다. 구원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을 내가 천국의 시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자비로 인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마음 깊이 깨달아진다면 내 마음을 찢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성도들은 구원을 회화화 하고, 가볍게 여깁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하나님의 자비와 공로가 아닌 인간의 공로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내가 도대체 어떤 공로가 있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