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審 혹은 初心)
- 지난 한 주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으로 한바탕 광풍이 휘몰아쳤습니다. 500여 년 전 천주교는 종교개혁이라는 가시달린 채찍을 맞고 생사를 가르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500여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천주교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부분 비성경적 교리는 여전히 그대로이며, 알게 모르게 강화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는 꾸준히 교세를 넓혀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베네딕토16세가 갑자기 사임하면서 취임하게 된 프란치스코라는 교황을 맞아 천주교회는 더욱 부흥기를 맞이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교황 앓이는 당분간 계속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내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가 계속 성장세를 유지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이는 마치 착시효과와 같은 것인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저들이 약자의 편에 서 있으며, 세상을 향하여 열려있다고 생각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성령으로 새롭게 하옵소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곽인순 목자 초청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목장사역 11년을 지나고 있는 우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회 이후의 우리의 삶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물이 세상을 향하여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지은 성전 안에 가두어 두려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지 말라고 외쳤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오랜 선민의식과 성전중심주의 신앙은 주의 제자들이나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조차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 복음 전하는 것을 꺼려하게 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를 모두 헬라파유대인들로 세우셨습니다. 헬라파유대인이었던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셔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떠나 세상을 향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전환점이 필요함은 목장사역 11년을 지나면서 사역이 안정되고, 동시에 안일에 빠지면서 우리 안에 거하려는 태도 때문입니다. 섬김을 통해 세상에 감동을 주고, 영혼구원이 나눔의 주제가 되는 사역의 초심으로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섬김과 헌신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래서 목자의 사역을 특권으로 생각했던 초심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