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은 빌립보서 1:12에서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나의 당한 일”이란 예루살렘에서 괜한 오해를 받고 아무런 죄 없이 고소를 받아 로마감옥에 투옥된 사건을 말합니다. “진보”란 교두보(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유리한 고지를 미리 점령한 것), 혹은 선발대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땅 끝까지 복응을 전하기 위한 교두보 확보에 있어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한 거대한 제국이었고, 모든 경제와 길과 언어가 로마중심이었습니다. 만약 로마제국에서 복음의 혁명이 시작된다면 세계복음화는 엄청난 속도를 더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죄인이 되고, 결박을 당한 채 로마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에 복음의 교두보를 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었습니다. 비록 죄인의 신분이었지만 사사건건 바울에게 시비를 걸고,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의 간섭과 방해 없이 오히려 로마 군인들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아 로마에 들어왔고, 당시 로마의 고급인력이었던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로마의 핵심적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들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곤충학자가 누에고치에서 허물을 벗고 나비로 태어나는 산고의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미물이지만 산고의 고통이 안쓰러워서 좀 도와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메스(수술용 칼)로 고치의 배를 살짝 갈라주었습니다. 나비는 쉽게 허물을 벗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 날개 짓을 하더니 이내 추락하고 죽어 버렸습니다. 하물을 벗는 산고를 통해 힘을 기르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을 하고, 날개가 자라고, 힘을 얻는 것인데, 그 과정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혹은 인간에게 고난이란 무엇일까요? 복음과 성숙을 위한 교두보입니다. 아이들도 같습니다. 요즘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한 둘이라 그런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과 어려움마저도 대신해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합니다.
고난이 즐거울 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두려워 마십시오.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음과 나의 성숙을 위한 교두보로 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의 경륜으로 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