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이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때, 그 상처 때문에 인격이 망가지고 삐뚤어져 결국 인생이 낭비되는 수도 있지만, 상처가 그의 내면에서 잘 승화될 수 있다면 우리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사람을 안아주고 치유하는 치유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에게 고난이 허락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스스로 경험해 보기 전에는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암에 걸려 본 사람만이 암 판정을 받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를 알기 때문에 쉽사리 ‘믿음으로 이겨내라.’라는 식의 얘기를 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잃은 어떤 자매님이 슬픔을 견디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교회 식구들이 와서 위로한다면서 ‘천국에 갔으니, 천국에서 볼 수 있으니 괜찮잖아…’ 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시간을 지내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에서 억울하고 수치스러움이라는 감정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싶고, 누군가 무고한 사람에게 그런 일을 지우는 것이야 말로 정말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중가운데 억울하고 수치스러움을 겪는 분들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분들에게 교회를 떠나지 말고 잘 견디어 내라고 얘기했지만, 그 역시도 내가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했던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억울함을 심어준 적이 없었는가 싶었습니다. 왜 없었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억울함과 수치를 심어주지 않으려면, 세 가지를 기억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소문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문만큼 왜곡되기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문을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게 되고 그렇게 소문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여러분들이 누군가로부터 받는 상처나 삶의 고통이나 고난에 대해 누군가 겪고 있을 사람들의 아픔을 좀 더 이해하는 성도가 되라고, 좀 더 섬세하게 남을 배려하는 성도가 되라고, 특히 상처받은 치유자의 역할을 좀 더 잘 하라고 주님이 주신 시간으로 아시면 좋겠습니다.
가정교회 북미지역 가사원장 이수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