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기초한 맹종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염두에 둔 말씀으로 두려움에 기초한 맹종은 불순종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타난 두 아들은 그들의 행동만큼이나 성격적으로도 상반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탕자인 둘째 아들은 철저히 개인적이며, 자유분방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간섭을 극히 싫어하는 사람인 반면에 큰아들은 순종적이고, 공동체를 중요시하며, 전통 또한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닌 죄인이라고 하십니다. 큰아들과 둘째는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았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재산이었습니다. 작은아들은 노골적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절대적 순종과 아버지의 공동체 안에 거함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우리는 큰아들의 말이 맞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아들이 탕자라는 말에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이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생이 돌아왔을 때 큰아들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거나 존경해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큰아들은 동생이 돌아와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말아먹은 동생을 받아준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몫이 또 줄어 든 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큰아들도 둘째 아들도 사랑합니다. 작은아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버선발로 나아가 환영을 했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큰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것을 알고는 먼저 나아가 함께 잔치에 참여할 것을 권했고, 자신의 재산이 다 네 것이며, 또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지 않으냐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비유 속에 큰아들은 끝내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둘째 탕자는 비록 불순종했지만, 다시 아버지의 사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아버지와 더 멀어졌습니다. 큰아들의 아버지께 대한 맹종은 두려움 때문이지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맹종을 통해 아버지를 통제하고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선은 도덕적 순응이나 자아발견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겸손과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