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동생
누가복음 15장 안에는 세 가지 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탕자의 비유)입니다. 세 비유의 특징은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때, 주변 사람들과 함께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목자는 백 마리 양 가운데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온 들판을 헤매며 기필코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도 같습니다.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집을 빗자루로 쓸며 마침내 찾고야 맙니다.
그런데 탕자의 비유에서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서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러면 누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러 나서야 했을까요? 창세기의 말씀 초반에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묻습니다. “가인아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런데 가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까?” 맞습니다. 형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생을 지키고는 자여야 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형 가인은 동생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분노가 가득해서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탕자의 비유 안에 형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형은 오히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동생을 기뻐함으로 맞아 주기는커녕 아버지가 용서하고 받아드렸다고 분노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잃어버린 이 땅의 수많은 영혼을 누가 찾으러 나서야 할까요? 우리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잃어버린 동생 같은 우리의 이웃이 들어왔을 때 형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기뻐하기는커녕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멋들어지고 큰 자비로 가득한 진짜 큰 형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하늘 보좌와 하나님과 동등 됨을 버리시고 인간이 되어 낮고 천한 곳 이 땅에 우리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이제는 누가 세상으로 가야 할까요? 아버지는 우리가 가기를 기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