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Adieu) 2019
요즈음 자주 황당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외출하려고 문밖을 나섰다가 잊은 것이 기억나 되돌아와서는 무엇을 찾으려했는지 생각이 안나 당혹해 합니다. 용건이 있어서 전화번호를 누르고는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하고 대답을 하는데 정작 무슨 용건으로 전회를 했는지 깜빡 잊어버려서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건망증은 저뿐 아니라, 현대 크리스천들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의 백성으로 불러주셨는지, 이유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가정 교회는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존재 목적을 망각에서 회복시키자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이런 회복은 교회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필요합니다.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40).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실 때에는 자신의 제자라는 증거로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요 13:35). 사랑이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문제로 고민하는 크리스천이, 저를 비롯하여 많지 않습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파격적인 사랑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어도 먼저 찾아가서 화해하는 사랑입니다(마 5:23-24).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는 사랑입니다(눅 6:27-28).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랑입니다(마 5:44). 진정한 사랑은 마음가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소유를 다 나누어주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고전 13:3). 사랑 없이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일상생활에서 시작됩니다. 오래 참고,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성 내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고전 13:4-5).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남을 성공시켜주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이 2019년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 사랑은 제 삶의 커다란 주제입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2020년을 내편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싶어 포기했던 사람들과 다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합니다. 성도님들도 2020년 새해 결심의 주제를 사랑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