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부활절(2)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창세기 22장 5~6절)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함께 예배드리러 갔다가 온다고 합니다. 지금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러 가는 길인데 어찌 다시 같이 온다고 하는가? 아브라함은 예배를 부활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죽고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죽지 않으면 다시 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길은 먼저 죽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기 전에는 부활을 알 수 없습니다.(빌 3:10~12) 예수님의 죽음과 그 부활의 영광을 예배 가운데서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빌 2:5~11)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 이미 하늘의 영광도 본체도 다 버리시고 인간의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 당신을 죽이신 것입니다.
뉴욕에 노(老)사도 요한과 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 지난 성금요일 하나님의 품에 안기신 분입니다. 그는 유학생 시절 중국인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했습니다. 유학생에게 웨이터 자리는 너무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어느 토요일 자정, 그는 웨이터들이 목에 매고 일하는 보타이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멈췄습니다.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는 식당에서 일을 멈춘 것은 그 식당을 그만두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요일 자정마다 그러기를 두 달 후, 식당주인이 그를 불렀습니다. “이젠 우리 식당 그만두게”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반대로 “우리 식당 매니저 일을 맡아주게”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청년에게 신뢰를 보낸 것입니다.
그 청년은 예배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죽고자 하는 그를 부활시켜 점점 상상도 못 할 큰일에 쓰셨습니다. 그는 미주 한인교회 역사에 큰 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세계 선교에 다양한 영향력을 끼치고 영원한 나라로 가셨습니다. 예배에서 죽고 예배에서 부활의 권능이 무엇인지 아셨던 그분은 퀸즈 장로교회 원로목사님이신 장영춘 목사님입니다. 그는 이 땅에 바른 예배를 남기고 영원한 예배의 나라로 떠나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