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2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나신 온누리교회 하용조목사님은 20대 대학생시절 폐결핵을 시작으로 군대에서 다시 폐결핵의 재발, 그리고는 줄곧 간경화증, 간암, 신부전증, 당뇨 등으로 고생했으며 7번의 간 수술을 했습니다. 지난 5년간은 신부전증으로 매주 2, 3번에 걸쳐 혈액투석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그분의 병력으로 보아서는 살아있었다는 것이 기적이고, 매주 설교선상에 서셨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아픔이 그분의 복음전도와 목회를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피곤과 힘든 것은 엄연히 다르다.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기쁨이 있고, 피곤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피곤은 힘들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라는 단어가 명사나 동사로 16회나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를 통해 바울이 권면하는 기쁨은 결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감성으로 포장된 피상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우선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의 감옥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는 팔자가 좋고 안락한 상황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날 그는 병을 달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노쇠했고 그의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가이사의 마지막 재판에서 어쩌면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기쁨으로 고난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불평하며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고난도 손상하지 못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1:29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인생과 신앙은 편하다고 행복하거나 기쁘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버거워도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위해 수고할 때 옵니다. 편하기 위해 목장모임을 간식으로 대체하고, 쉽고 편하게 모이기 위해 낮 모임을 선호하면 남편구원이나 이웃의 영혼구원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편리를 추구하는 목장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리는 모임으로 전락합니다. 쓸데없는 일로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면 안 되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가치 있는 일에는 희생하고 대가를 기꺼이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기쁨과 열매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