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선택을 위한 긴장감
나이가 젊었을 때에는 옳고 그름,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의 구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선한 일에도 불순한 동기가 있고, 악한 일에도 순수한 동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할 때 더욱 신중해지고 선택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인데 신뢰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실 때, 인간은 그저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구경만 했지만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에는 기도는 모세가 했지만 여호수아의 치열한 전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의 목표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교회의 본질을 외쳐대도 성장이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교회 본질 회복과 성장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다 추구하자니 긴장감이 생깁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인 영혼구원과 제자 만드는 일에도 긴장감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만드는 일에 있어 언제까지가 vip이고, 언제부터 제자로 만드는 훈련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섬겨주기만 하고 섬김과 책임감을 가르치지 않으면 영적인 어린아이에 머무르기에 훈련에 들어가야 하는데 vip는 이것을 압박으로 느끼고, 서운해 하며 교회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더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제자가 되도록 훈련해야 할지 긴장감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사역을 위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제직이나 목양을 맡기면 목원도 힘들고, 본인도 감당이 안 되니 탈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홀로서기가 안되고, 좋은 사역자의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하기에 긴장감이 생깁니다. 또 과다한 자치권은 실수나 교만의 위험이 많고, 너무 내버려두면 방치가 되니 이 경계에도 긴장감이 생깁니다.
긴장감은 스트레스를 가져오기에 이것이 싫어서 편한 쪽을 선택할 수 있지만 신앙과 사역에 균형은 너무 중요하기에 불편하고 힘들어도 긴장감을 감수해야 합니다. 균형이라는 것이 교과서적인 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들과 사역자들에게 기도의 삶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순간순간 선택의 긴장감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구해야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