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는 나무와 가지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애를 씁니다. 때를 맞춰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비료를 뿌려주고, 때로는 가위로 전지를 해주고, 어떤 때는 나무를 옮겨심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무와 가지는 몸살을 앓습니다. 그래서 농부를 오해하고, 나에게 왜 이러시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부가 주는 것은 그 어느 것 하나 나무와 가지에게 해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1. 비록 때로 괴롭고, 몸살을 앓고, 고통이 있어도하나님은 나의 농부이시기에 가지인 나의 유익과 열매를 위해 이렇게 수고하시고, 애쓰시는구나! 절대적인 신뢰와 감사함으로 사는 것입니다.예수님은 본문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을 근거로 무엇이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 여기서 “너희가 내 안에 머문다.”은 말씀은 ’붙어 있으면‘으로 해석하셔도 됩니다. 혹은 절대적인 신뢰와 감사입니다.
2. 좋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때를 맡기며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인간이 때 운운하는 것은 건방지고 교만한 것입니다. 비료를 언제 줄 것인가? 소독약은 언제 칠 것인가? 가지 전지는 언제 할 것인가? 단 한 가지도 나무나 가지가 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농부이신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그래서 종말이나 예수님의 재림도 하나님의 결정이고, 선택입니다. 가지 된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가지 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는 그때를 기다리며, 그때가 오기까지 어떻게 믿음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 포도나무는 사과나무나 감나무처럼, 과실을 맺는 나무입니다.그렇기에 과실을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라고 하셨으니 성도의 삶에는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가 있습니다. 그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 그 열매가 무엇인지에 대해, 본문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9, 10, 12절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그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겠습니까? 롬 12:15에서 바울은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했습니다.
- 젊은 나이에 남편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자매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투병 중일 때는 한 번도 와보지 않던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이러저러한 말들로 위로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위로는커녕 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오랜 남편의 투병으로 인해 집안 살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어, 엉망진창인데 지치고 지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모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모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부엌이며, 안방이며, 온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이모가 단 한마디의 위로나 격려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고, 남편이 떠난 텅빈 공간이지만 홀로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러므로 곁에 있어 준다는 것은 동감(同感)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불현듯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가슴을 치며 통곡할 줄 뻔이 알면서 왜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가?” - 곁에 있다는 것에 동감이라면 전화, 편지로도 가능
또 하나, 사랑이란? 포도나무이신 주님의 가지로서 후배들에게 밑에 가지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가장 최근에 생긴 가지일수록 맨 위쪽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이 가지에 열매가 맺습니다. 그런데 가장 오래되고 굵은 가지가 자신이 선배이니 맨 위로 올라가겠노라고 하면, 그 가지의 무게로 인해 얼마 후 나무마저 무게를 못 견디고 부러지거나 휘거나 꺾일 것입니다. 그러면 다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래된 가지는 가장 밑동에 거하면서 연약하고 나약한 새로운 가지들의 받침이 되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분란이 일고, 시끄러운가요? 서로 윗가지가 되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26.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 20:26-27).” 하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셔야 하는 분이시지만 인간보다 더 낮은 곳에 임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