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삶의 한 축인 가정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가정은 성도에게 있어 사랑을 실천하는 한 축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가 되었든 부모와 자녀와의 사이가 되었든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가정에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믿음)는 밑바닥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사랑과 믿음은 구별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만 신뢰할 수 없다거나 신뢰는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추악한 죄인인 우리를 믿어주시는 까닭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다함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까닭도 우리를 믿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었지만 얼마나 많은 배신과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를 믿으시기에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살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배우자가 아닙니다. 기대에 어긋나는 모습도 많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를 짝지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래서 천생배필임을 믿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도 믿음의 관계입니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합니다. 크면 클수록 부모의 의도와 멀어지는 행동이 많아집니다.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칩니다. 눅15장에 탕자와 큰 아들이 그렇습니다. 탕자가 집을 나선 순간 부터 아버지는 기다렸습니다. 다시 돌아올 줄 믿었기 때문이고, 돌아오면 변할 것을, 믿었기에 잔치를 베풀며까지 환영했습니다. 제가 목회에 후회함이 없다고 말하는 까닭은 제가 목회를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부르신 목적을 이루고야 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형제 사이에서의 믿음(신뢰) :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 주신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가장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 기록된 부활의 목격자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서 당신의 부활을 보여 주신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첫 대상이 베드로 사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사도들이었고, 그다음은 500여 형제자매라고 했는데, 500여 명이나 되는 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만나셨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번에 만나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바울이 고린도서의 편지를 기록할 때에도 살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형제 중 야고보에게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 도마에게 보여 주신 사건을 말하는지, 아니면 갈릴리에서 물고기 잡던 제자들을 만나신 이야기를 하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이 다메섹(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을 기록했는데,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환상이나 어떤 영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직접 바울을 찾아오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특별히 오늘은 동생 야고보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마 13:55-56에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남자 형제들인 야고보와 요셉, 시몬, 유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여자 형제들도 있었는데, 이름이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 가까이 평범한 모습으로 실질적인 가장으로 가족을 책임지며 살았던 예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니 구주이니 하는데,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형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고 믿어주셨습니다. 특별히 바로 밑 동생 야고보에게 더욱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와 사도들을 같은 집단 명칭 속에 포함했습니다. 훗날 야고보는 마가의 다락방 120명의 무리 속에 사도들과 함께했고, 예루살렘교회의 실질적인 담임목사가 야고보였습니다. 행 15장에 안디옥교회의 일로 최초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였을 때도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고 결론을 지은 것도, 야고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나 바울이 최고의 리더가 아니라 야고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형제들까지도 끝까지 믿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현장 중 하나인 가정에서 믿음과 사랑을 보여 주셨고, 그 결과 야고보 같은 믿음이 지도자가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