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 않았을 때에는 자유했습니다. 종교의식이나 예배나 기도나 전도나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자식은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도 번거롭게 수많은 절차와 단계가 필요 없습니다. 언제든 자유롭게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절차와 단계가 있다는 말은 가족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두려움과 수많은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한 방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은 법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합니다. 하지만 섬기고 싶고, 다 주고 싶고,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하고 기쁨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나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그래서 종교적인 사역은 하면 할수록 무겁고 짐이 되고, 속박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은 사역하고 섬기는 것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유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 어떤 엄마가 고등어를 구울 때면 늘 꼬리부분을 잘라내고 굽습니다. 어느 날 어린 딸이 엄마는 왜 고등어 꼬리를 자르고 구워? 엄마가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고등어를 굽기에 자신도 그렇게 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녀가 할머니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의 할머니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증조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셔서 물었습니다. 증조할머니는 왜 고등어 꼬리를 잘라내고 구웠어요? 응? 일부러 꼬리를 잘라낸 것이 아니고, 작은 프라이팬에 고등어가 통째로 들어가지 않아서 어디를 잘라낼까? 하다가 꼬리를 잘라내고 구웠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종종 손도 안 씻고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고 비난합니다. ‘위생상 좋지 않습니까?’ 이정도면 이해가 되는데 마치 무슨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 7:8)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손 씻는 것은 그들의 전통이지 성경에 있는 규칙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의 전통을 성경인줄 알고 주님을 비난한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규칙이 아닐뿐더러 왜 손을 씻어야 하는지에 대해서조차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 인간의 감정에 대해 나눠보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과 좋은 감정으로 나누면서 부정적인 감정은 참거나 무시하거나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내 몸에 어딘가 통증이 오면 그것은 증상이고, 통증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어떤 원인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가서 진찰을 받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거야! 살다보면 아플 때도 있지! 그러면서 참거나 무시하다가 나중에는 치료가 안 될 정도로 크게 아플 때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것도 내 마음에 근본적인 어떤 것에 대해 이것이 외부로 마음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슬프다. 괴롭다. 죽고 싶다. 우울하다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자꾸 나올 때는 자꾸 참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뭔가 내 마음에 근본적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배우자와의 갈등이 있거나 친족, 혹은 시댁과의 갈등이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등등의 문제로 인해 감정을 통해 마음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감정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 처음에 아름다웠던 신앙이 점점 종교적인 신앙으로 변질되는 과정도 감정의 문제와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기쁘고, 행복하고, 눈물이 나고, 좋았는데, 왜 지금은 힘들지? 부담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되지? 불평과 원망이 떠나지 않지?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신앙적으로 들면, 내 마음에 근본적으로 어떤 아픔이나 통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든지, 깊은 주님과의 대면으로 들어가든지, 주변, 혹은 목장 가족들에게 자신을 부정적인 감정을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든지 그래서 내면에 숨겨진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무조건 참거나 무시해 버리니, 시간이 지나면 불평과 원망이 자꾸 외부로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담임목사와의 관계, 목자와의 관계가 나빠집니다. 그리고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 됩니다. 예배드리기 싫은데, 안 드리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기도하기 싫은데, 내가 집사데, 목자인데, 눈치 보이니 하는 척 하는 것입니다.
몸의 통증은 참지 않고 병원 가는데, 마음의 통증은 무시하거나 억압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신앙적인 문제로 변질됩니다. 육신은 아주 세세하게 내게 맞는 화장품, 내게 맞는 음식, 내게 맞는 옷을 찾으면서 내 마음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문제나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영적 병에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