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후 4:18에서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보이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돈이든 명예이든 재산이든 성공이든 반드시 사라지는 날이 옵니다. 그래서 신앙은 영원을 사모하는 것이고, 영원에 목표를 두고 사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은 영원을 주시고, 또한 영원한 삶을 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 중 무엇이 있을까요? 세 가지만 생각해 보면,
첫째,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만원을 가진 자는 10원으로부터 자유합니다. 금반지를 가진 자는 구리반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임을 정말 확신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천국 시민권자 임을 정말 확신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 할 뿐 아니라 자유함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단 하나도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코넬이 작사한 찬송 412장의 가사 중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평화가 내 맘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평화는 오직 하늘에 있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영원을 소유한 자가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 하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를 맘속에 소유한 사람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빌 4:4-6)
마지막으로 세월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이는 60을 넘고, 70을 넘어도 마음은 20대라고 하는 말을 멋있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이와 함께 마음도 함께 가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너그러워지고, 경륜도 깊어지고, 삶에 지혜도 많아지고, 주님도 더 많이 닮고. 그런데 20대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남을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영원을 소유한 사람은 세월에 자유하고 누려야 합니다.
* 1980년대 신군부의 등장으로 나라가 어수선하고 괴롭던 시절,성철스님이라는 분의 법어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법어라는 것이 무슨 비밀스럽고 신비한 것이 아니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였습니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인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세간의 관심을 끈 까닭은 성철스님이 불교계뿐 아니라 세간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인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심오한 진리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을 중국의 스님들이 해설한 ‘금강경오가해’에 이미 나오는 글입니다. 본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은 어디 계신단 말인가?”입니다. 모든 산과 물속에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데, 왜 깊은 산골 법당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애쓰는가? 삶의 현장에서 부처의 정신을 찾고 계승하라는 의미입니다.
- 오늘 본문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천사를 만났습니다.천사는 왜 빈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느냐고 하면서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은 살아나셨고, 갈릴리로 가셨으니 그곳에서 뵐 것이라고 전하라고 합니다. 여인들이 천사의 말을 전하고자 제자들에게 달려가는데, 이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기쁨과 두려움이 겹쳐 있는 여인들에게 주님은“평안하냐?” 하시며,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제자들에게 가서 그곳에서 만날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제자들도 지금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겠다고 하셨고, 그곳에서 제자들과 만나고자 하셨을까요? 갈릴리는 제자들의 고향이고, 이곳에서 어부로 살았고, 이곳에 여전히 가족과 친척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릴리에서 가까운 나사렛에서 성장하셨고, 거의 3년 가까이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신 곳이 갈릴리입니다. 주님은 이곳 갈릴리서 제자들에게 다시 사명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지상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19-20)." 복음은 땅끝까지 전해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1:8에서도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시작은 내 삶의 터전, 내 가족, 내 믿음의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고, 여기에서 내 믿음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이후 번번이 쫓겨났습니다.다메섹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그리고 고향 다소에서 13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복음의 현장, 목회의 현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