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할 말씀:“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2-44)
나이 드신 어른들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을 하고 싶어 하면 젊은이들은 살만큼 사셨는데 왜 그러시지? 합니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고통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고통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고통이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님도 고난과 고통이 좋아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장차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가기로 결정하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시지 않고 사명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신 것은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시 붙드신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면 결코 주님의 고난과 고통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원망하고 도망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천국의 상급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를 위한 고난의 끝에는 진정한 행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님도 고난의 끝자락에 있을 상급을 바라보셨습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 ‘하나님의 보좌 우편’ 같은 표현들은 바울이 로마서 8:18에서 말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와 맥을 같이 하는 것들입니다.
믿음으로 살려면 고난을 사명으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고난과 고통에 참여하지 않고 복 받으려는 생각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닙니다. 고난을 피하게 해달라고, 아니면 고난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고난을 이기고 극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영적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난과 고통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