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여행이나 tv등을 통해 피카소의 그림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제게 그리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피카소의 작품에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입체파’의 그림에 아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며, 아는 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서나 예외가 아닙니다.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과 해일로 인해 인도네시아인 17만 명을 포함 23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높이 30m, 시속 800km의 무서운 속도로 덮친 해일을 누가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원주민들은 예사롭지 않은 구름과 바람은 물론 평소와 다른 새와 동물들의 움직임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천재지변이 일어 날 것을 예감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여 목숨을 건졌습니다. 평상시와 다른 자연의 모습이 어찌 원주민들에게만 보였겠습니까? 하지만 원주민들은 왜 다르지? 생각했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경험을 통해 질문에 답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없는 생각과 질문을 통해 얻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첫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해 보셨습니까? 특별히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드리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약 이 말씀을 거부하거나 믿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요? 나는 다윈이 말한 원숭이의 후예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식견과 경륜,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여도 제법 진화하고 누릴 줄 아는 원숭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인 존재일 뿐이고 흙으로 돌아가면 끝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믿는 사람은 평소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비록 세상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여도 어둔 세상을 비추는 진리의 등불이 되고, 자기 존재이유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고, 자기 생명을 허무하게 흩날려 버리는 자로 하여금 생을 바르게 건져 올리게끔 이끌어 주는 인생의 길라잡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품고 있는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말씀이기에 그 말씀의 능력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행할 수 없었던 것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말 진지하게 질문하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해답이 없음을 알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믿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 어떤 질문을 지니고 사셨습니까?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지식과 직위를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참된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었습니까? 질문이 바르지 못하면 답도 바를 수 없는 것입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