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예수님께서 죽음을 직전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의 모습을 복음서에는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있습니다.마 26:37, 38에서 “고민하고 슬퍼하사”,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하셨고, 눅 22:44에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주님을 두렵고 고민되게 하셨을까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죽음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의 짐을 지고 죽는 것이고, 또 이 길은 그 무게만큼 공포스럽고, 고통스럽고, 참담함을 아시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도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눅 22:42) 하셨습니다.
눅 22:44에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되더라.” - 의사들은 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혈한증”이라고 하는데, 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해 땀샘과 연결된 모세 혈관이 터지면 그렇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창조주이신 주님도 이런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숨기지 않고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런 상황과 마음의 고통을 주님을 누구에게 제일 먼저 고백하시고, 도움을 요청하셨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셨습니다.
-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풀이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쳐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최후의 목적지이고, 본향인 하나님의 집에 이르려면 죽음의 골짜기 같은 상황과 환경과 맞닥트려야 하고, 실제적으로 죽음의 통로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만나면,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조차 엉뚱한 곳을 찾아갑니다. 친구라든지, 부모님이라든지, 아니면 상황을 잊으려고, 술이나, 마약 같은 노름에 빠지거나 점집을 찾거나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왜?, 어떻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골프를 치다가 골프공이 숲에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숲이 아닌 뻥 뚫린 숲 사이를 바라보며, 잔디밭으로 공을 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주님은 십자가라는 공포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침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몸이 거구인데다가 무릎도 안 좋습니다. 세상에 제일 싫은 게 운동입니다. 그런데도 아침마다 뛰는 분이 있습니다. 왜? 아버지 어머니 모두 심장병을 앓다가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살기위해 뜁니다. 히브리서는 살고 싶으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다윗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